인문학, 사회/사회

"명정40년" -천재시인 변영로의 취중40년,'논개'

킴차카007 2025. 7. 8. 00:15

 

팟캐스트해설

 

이글은 새 블로그 https://juchacarlife45.tistory.com/3 에서 퍼온 것입니다..

 

🍶 술에 취해 피어난 문학의 낭만: 수주 변영로와 그 시대의 주정(酒情)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 세상에 나온 수필집 『명정 40년』은 시인 수주 변영로(卞榮魯, 1898~1961)가 자신의 반생을 술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회고한 작품입니다.

‘명정(酩酊)’이라는 단어가 뜻하듯, 이는 단순한 음주의 기록이 아니라, 시대와 인생, 문학과 관계를 관통하는 한 천재의 고백이자 시대의 기록입니다.

“나는 술 없이 살아본 적이 없소.
술은 나의 교과서였고, 시상이었으며, 해방이었소.”

 

그의 이 한마디는, 그가 술을 단순한 기호가 아닌, 삶의 철학이자 예술의 매개로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  수주의 생애와 친구들: 문단의 낭만적 방탕

 

 

수주 변영로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 지식인이자, 시인이며 수필가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시대의 굴곡 속에서 자유로운 정신과 기행으로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그와 술잔을 나눈 문우들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 염상섭 – 『만세전』의 작가, 문단의 리얼리스트
  • 황순원 – 『소나기』로 한국적 서정을 이룬 소설가
  • 오상순 – 일본에서 돌아온 모더니즘 시의 선구자
  • 이관구 – 조선일보 기자, 예술가적 감성의 소유자
부산 피난시절 한 일간지의 좌담회에서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염상섭, 시인 오상순, 소설가 박종화, 시인 변영로[출처] [명정 40년 · 변영로] 酩酊

이 네 사람이 펼친 유명한 일화가 바로 ‘성북동 나체 퍼포먼스’ 사건입니다.
갑자기 들어온 원고료를 술집에서 몽땅 탕진한 뒤, 모두 옷을 벗고 소를 타고 성북동 산에서 내려와 혜화동 로터리까지 진출하는 기행을 벌인 것이죠.

그 기이한 퍼포먼스는 오늘날 ‘예술적 해방’이라 불릴 만한 사건이지만, 그들에게는 시대의 억압과 혼란 속에서 분출된 낭만과 허무의 표현이었습니다.

 

🥃 그 시대의 술 문화: 주막에서 시작된 예술

 

술도가와 주모

당시엔 대부분 술을 직접 담가 마셨습니다. 양조장이 곧 집 옆의 술도가였고, 이를 운영한 이는 ‘주모’였습니다. 술은 ‘막걸리’부터 ‘청주’, ‘약주’까지 다양했고, 간혹 일제에 의해 유입된 소주와 양주도 일부 유행했습니다.

 

주막 문화

문인들과 예술가들은 경성의 주막이나 통인동, 성북동의 골목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세상을 논했습니다.
고기 몇 점, 두부김치 한 접시, 그리고 술 몇 병이면 혁명도, 시도, 사랑도 시작되던 시대였습니다.

 

🧠 천재 시인의 불꽃 – 「논개」 

수주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단연 「논개」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되살리는 상징적인 서정시였습니다.

이 시는 한민족이 겪은 굴욕과 분노를 논개의 의기로 승화시키며, 특히 기생조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아이러니한 감동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1940년대의 문인들에게 "논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문학적 방파제이자, 식민지 지식인들이 느꼈던 분노와 좌절의 정화였던 셈입니다.

 
 

📜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술의 시대, 병든 사회

 

현진건이 1921년 발표한 수필 「술 권하는 사회」는 수주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당시 조선 사회의 병든 술 문화를 꼬집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조선은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사회다. 슬퍼도 마시고, 기뻐도 마시고, 모욕을 당해도 마신다"고 하며, 술이 감정을 해소할 유일한 창구가 된 현실을 비판합니다.

그 시대의 지식인, 예술가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낭만을 말했지만, 동시에 그 술잔 속에는 일제의 억압, 민족의 좌절, 개인의 절망이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이죠.

 

🎨 그 시대, 술에 취한 예술

🎨 회화 속 주정

  • 이중섭의 은지화에서는 술잔을 들고 춤추는 인물이 보이며,
  • 박수근은 주막에 모인 사람들의 정취를 담아내며 소박한 술 문화를 묘사했습니다.

 

🎵 술과 함께한 노래들

  • 🎼 ‘애수의 소야곡’(1940년) – 시대적 슬픔과 회한이 담긴 곡
  • 🎼 ‘나그네 설움’(백년설) – 술이 위로가 되던 시대의 감성
  • 🎼 ‘울고 넘는 박달재’ – 산과 주막, 이별과 회포를 담은 민속가요

 

남인수 애수의 소야곡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수주 변영로의 『명정 40년』은 단순한 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억압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의 초상이며,
술이라는 감정의 통로를 통해 피어난 인간 본연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처럼 계산된 음주, 일회성 소비가 아닌,
그들은 술을 통해 벗을 만나고, 진심을 전하고, 문학을 논하고, 때로는 미쳐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련한 열정 속에서,
‘논개’ 같은 시가 태어났고, ‘술 권하는 사회’ 같은 통찰이 나왔으며,
예술과 우정과 인생이 술기운 속에서 더 진실해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현대의 우리에게

 

가끔은, 수주의 말처럼
“한 사발의 막걸리”가
인생의 가장 깊은 진실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말술보다 마음술,
술기운보다 시심,

 

그 시대의 주정을 기억하며, 우리도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조금 얻어보면 어떨까요?

 

조선의 오렌지족-'모던걸,모던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