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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송이 장미'와 '백학', 그리고 "모래시계"

킴차카007 2025. 7. 10. 01:24
팟캐스트해설

러시아의 영혼이 담긴 노래 – '백만송이 장미'와 '백학', 그리고 "모래시계"


러시아 회화처럼, 노래는 그들의 영혼을 품고 있다 – Ivan Shishkin의 ‘소나무 숲의 아침’

 

어떤 노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립니다. 러시아 노래인 **‘백만송이 장미(Миллион алых роз)’**와 **‘백학(Журавли)’**은 바로 그런 노래입니다. 

러시아 민족의 광활한 대지, 전쟁의 기억, 그리고 예술가의 순애보가 담긴 이 노래들은 한국에서도 번안되고 재해석되며 한 시대의 감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은 그 두 곡의 탄생 배경과 의미, 그리고 한국에서의 수용을 함께 돌아보려 합니다.

 

🌹 백만송이 장미 – 사랑을 위해 세상을 바친 한 예술가

 

🎨 원곡 배경 – 러시아의 시와 전설

 

‘백만송이 장미’는 라트비아 작곡가 라이몬즈 파울스와 러시아 시인 보즈네센스키의 협업으로 1982년 완성되었고, **Aija Kukule & Līga Kreicberga**가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Dāvāja Māriņa - (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 : 백만송이장미 원곡) - Aija Kukule & Līga Kreicberga

가사는 실존 인물인 조지아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죠.

조지아 지폐에 실린 '니코 프라스마니 초상'

그는 프랑스 여배우'마가리타'를 사랑했지만 가난했습니다. 결국 그림도, 집도 팔아 그녀의 사랑을 얻기위해 광장에 장미를 가득 뿌렸다고 합니다.

장미이야기의 그림(오른쪽)과 실제 모델 마가리타(왼쪽).

 

심수봉이 불러낸 한국적 감성

 

한국에서는 심수봉이 이 노래를 번안해 불렀고, 그녀 특유의 감정 표현과 떨리는 음색이 곡에 한국적 정서와 애절함을 더했습니다.
그녀는 ‘그때 그 사람’, ‘비나리’, ‘미워요’ 등의 곡으로 사랑받은 국민가수이며,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음악을 선물해온 인물입니다.

“백만송이,백만송이,백만송이 꽃은 지고
그립고 아쉬움에 별나라로 찾아갔다네…”
– 헌신적 사랑이라는 동양적 미학이 이 번안가사에서 절절히 전해집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정서적 대표 명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심수봉 (Shim Soo Bong) – 백만송이 장미 [불후의 명곡2 전설을 노래하다/Immortal Songs 2] | KBS 250215 방송

🕊️ 백학(White Cranes) – 전쟁의 아픔을 하늘로 날린 노래

💔 러시아 원곡 – 죽은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노래

 

‘백학(Журавли)’은 1969년, 러시아 시인 라술 감자토프의 시에 작곡가 얀 프렌켈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가장 유명한 버전은 가수 **마르크 베르네스(Mark Bernes)**가 부른 것으로, 그는 녹음 직후 세상을 떠나며 이 노래에 전설적 울림을 더했습니다.

Марк Бернес - Журавли / Mark Bernes - Cranes

“나는 때때로 생각해요. 전쟁에서 죽은 이들이 하얀 백학이 되어 날고 있을 거라고…”

 

이 노래는 소련에서 비극과 위로의 상징으로 불렸고, 장례식과 추모행사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White Cranes / Журавли / Zhuravli - 하얀 학 (백학) with English, Persian & Korean Subtitles

<모래시계>의 BGM, 한국인의 기억이 되다

 

한국에서는 1995년 방영된 전설적 드라마,당시 최고 시청률 64.5%' **<모래시계>**의 BGM으로 주요 장면마다 ‘백학’이 사용되며 대한민국의 국밈들 마음에에 깊이 각인됩니다.


드라마는 이정재, 고현정, 최민수,박상원이 주연을 맡았고, 1970년대 유신 체제,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조폭의 등장과 경제 성장기의 혼란 등을 시대 배경으로 삼아, 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야망을 그렸습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 시대와 청춘의 명대사, 사형장으로 향하는 최민수가 어린시절 부터 친구인 사형집행 참관인으로 나온 검사 박상원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귓속말....

드라마 속 ‘백학’은 죽은 청춘들의 혼이 되어 하늘을 나는 이미지로 쓰였으며,
마치 러시아의 전쟁가처럼,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치열함을 위로하는 선율로 작용했습니다.

 

 

🕰️ 그 시대, 한국은…

  • 1970년대 초중반~1980년대 초
    유신 독재, 광주민주화운동, 산업화로 인한 극심한 격차, 학생운동, 그리고 급속한 도시화로 대표되는 불안과 진통의 시대였습니다.
  • 드라마 <모래시계>와 ‘백학’은 그 시대를 통과한 많은 이들의 집단적인 상처와 기억, 그리고 위로를 담고 있었죠.
 

🌾 노래는 시대를 품는다

 

이 두 러시아 노래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서, 시대의 기억을 품고 전해주는 서사시처럼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는 이 노래들이 번안되어 또 하나의 민족적 감성으로 녹아들었고, 그 울림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저에게 이 노래들은 시처럼, 기도처럼, 인생 어느 순간마다 다시 꺼내 듣는 깊은 음악입니다.

 

여러분께도 이 노래들이 한 줄의 시처럼, 또는 한 편의 영화처럼, 마음속에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